늦바람

Date
2024/03/0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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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hinkings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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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은 노는 게 좋다

어디 뭐 방탕하게 술 마시고 놀러다니는 게 좋다는 게 아니고,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을 조금은 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.
주변에서는 연말연시 회고 쓰랴 이직 준비하랴, 나아가서는 해외 취업 준비하랴 영어 공부하랴 이판사판 공사판이다만, 혼자 늦바람이 나서 필름사진을 찍으러 다니고, 바이닐 음악을 듣고, 인센스 하나 켜고 방에서 조용히 책 읽는 걸 즐기는 인간이 있다.

돌아보면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

어쭙잖은 자기자랑이나 self-representation을 하려는 게 아니다. 그래도 남들 놀 때 열심히 달렸으니까, 열심히 해서 지금까지 이뤄둔 게 없진 않으니까. 잘 살았다, 성공했다고는 못 하겠지만(성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?), 열심히는 살았다.
그 과정 속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. 그 때는 잃었다고 생각했지만, 막상 이제 와 보니 별 것도 아니다. 조금 더 쉬면서 했어도 괜찮았을텐데, 하는 후회뿐이다.

바쁜 사람들은 늘 있다

주변의 장단에 맞추다 보면 그 속에서 나를 찾기 힘들어진다.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‘나’를 찾는 시간 정도는 확보해도 괜찮지 않겠는가?

늦바람이 무섭다고들 한다

나에게 더 무서운 것은 ‘내가 늦바람이 났나?’, ‘내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?’ 하는 공포감이다. FOMO라고도 할 수 있겠다.
바쁘게 살지 않을 것이고, 늦바람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.
대학생활 3년동안, 첫 직장을 얻은 날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고, 스스로를 위한 작은 선물조차 해 준 적이 없다. 이제야 잠시나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.
주어진 데 최선을 다하고, 힘들면 쉬고, 지루하면 좀 달려보고. 적어도 올 한 해는 이렇게 보내고 싶다. 일 벌리지 않고 가정과 연애와 회사에 충실히 살며 나를 찾을 것이다.
쉬고 돌아온 1년 뒤의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. 믿어야만 한다. 이런 믿음이 없으면 마음 편히 쉴 수조차 없다.